한창 웃고 떠드는 라디오 부스 안, 갑자기 울컥한 분위기가 흘렀다. ‘볼륨을 높여요’ 스튜디오에서 이효리는 오래된 인연인 메이비에게 말했다. “그 드라마 보다가, 진짜 눈물 콧물 다 쏟았어요. 요즘 왜 이럴까. 나… 갱년기인가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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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싹 속았수다로 울고 갱년기를 언급한 이효리, 사진=KBS CoolFM 유튜브 |
그녀가 언급한 드라마는 넷플릭스 ‘폭싹 속았수다’. 제주도에서 태어난 두 인물의 사계절 인생을 따라가며 70년 시간을 꿰어낸 이 드라마는, 이효리뿐 아니라 ITZY 채령·류진도 “폭싹 울었다”고 고백할 만큼 강한 파장을 남겼다.
💡 가치있는 정보 | 콘텐츠와 감정의 상관관계
- 중년 여성 시청자 대상 콘텐츠 소비량은 40대 후반부터 급증
- 감성 중심 드라마는 스트레스 호르몬 코르티솔을 31% 감소시킨다
- 갱년기 정서 관리에 드라마·영화 시청이 명상보다 효과적이라는 보고도 있음
◆ 단순한 감정 과잉이 아니다
이효리는 “그냥 감기에 걸린 탓이려니 했는데, 너무 보고 싶고, 감사한 얼굴들이 떠올랐다”고 했다. 갱년기의 정체는 ‘호르몬’만이 아니다. 나이 들어가는 존재가 삶의 장면과 재회할 때, 감정은 폭발적 형태로 표출된다.
심리학자 김보람 박사는 “갱년기란 육체적 쇠퇴일 뿐 아니라 감정의 재조직기”라며, “특히 정체성을 재구성하는 시기에 콘텐츠는 가장 강력한 거울이 된다”고 설명했다.
◆ 그런데 왜 하필 ‘폭싹 속았수다’였을까?
이 드라마는 달달하고 판타지적인 연애담이 아니다. 아버지와 딸, 이별과 가족, 선택하지 못한 인생이 섬세하게, 마치 우리 현실에서 보고 들은듯한 느낌을 주면서 얽혀 있다. 중년 여성들이 가장 공감하기 쉬운 구조다.
넷플릭스에 따르면 40대 후반 여성 시청자의 반복 시청률이 2배 이상 높았고, 감상평 키워드 상위는 ‘눈물’, ‘가족’, ‘내 얘기인 줄’이었다.
◆ 감정의 문이 열린다는 것
갱년기는 마치 댐이 열리듯, 감정이 봇물처럼 터지는 시기다. 억눌렀던 슬픔, 감사, 후회가 콘텐츠라는 자극에 맞닿을 때, 우리는 비로소 “나”를 마주하게 된다.
특히 여성의 경우, 감정이 부드러워지는 시기와 가족 중심의 콘텐츠가 맞물릴 때 ‘울음’을 통해 정서적 해방을 경험한다. ‘울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회복의 징후이기도 하다.
💡 가치있는 정보 | 중년 콘텐츠 처방 가이드
- 가족 중심 서사: 감정 회복과 정체성 강화에 효과
- 자기반영형 드라마: ‘내 이야기 같다’는 몰입이 우울감 완화에 기여
- 혼자 시청보다 ‘공유 후 대화’가 정서 순환에 더 유익
◆ “이런 갱년기라면 고맙다”
이효리는 그렇게 말했다. 감정이 북받친 자신을 당황스러워하지 않고, 되레 그 감정의 문턱에서 사람을 생각했다. “그런 기분 아니었으면 오늘 라디오 안 나왔을 수도 있어요.”
감정은 사람을 연결한다. 나이 들어 울보가 되는 건 약함이 아니라, 관계의 회복을 준비하는 예열일지도 모른다.
◆ 감정을 꺼낼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우리가 괜찮은 이유
갱년기는 더 이상 침묵하거나 숨겨야 할 고통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한 인간이 평생 품어온 감정의 지도 위에, 처음으로 스스로의 자리를 표시하는 순간일지 모른다.
그날의 눈물은 단지 눈물로 끝나지 않았다. 그것은 삶의 축적이었고, 아직 말하지 못한 사랑과 미안함, 그리고 살아 있다는 감각 그 자체였다. 콘텐츠는 그런 감정을 꺼낼 수 있게 해준다. 말보다 선명한 이야기로, 기억보다 따뜻한 장면으로.
슬그머니 스스로와 옆의 사람에게 물어본다. 당신은 마지막으로 무슨 컨텐츠의 어떤 장면 앞에서 울었는가. 그리고 그 눈물은, 누구에게 닿았는가? 폭싹 속았수다의 다사다난한 금명이와 사람들은 우리가 살아오는 동안, 도처에 함께하고 있었다.
그렇게 갱년기이든 아니든 나도 모르게 울고 나면, 문득 알게 된다. 이렇게 울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아직 괜찮다고. 마음이 여전히 움직인다는 건, 살아 있다는 뜻이니까.
그리고 그 울음이 또 다른 누군가의 마음을 흔들 수 있다면, 우리는 함께 괜찮아질 수 있다.
밸류타임즈 이지연 기자